본문 바로가기
육我 이야기

"사진보고 그려요, 그려진 그림보고 그리지 말고"

by 새벽달2020 2020. 7. 13.

부제 : 눈에 보이는 '그럴싸한 그림'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관찰하는 눈' 키우기 

 

 

새벽달람쥐 선생님이 그린 물웅덩이 

 

 

그림 왕초보인 나를 그림의 세계로 끌어준 새벽달람쥐선생님의 인스타 피드를 보다가 이 "물웅덩이" 그림에 반했다. 나 이거 너무 그리고싶다. 했더니 한번 그려보세요. 

 

말이 쉽지 이걸 어떻게 그리냔 말이다. 이 주문은 마치..... 고든 램지의 비프웰링턴을 맛있게 먹고 나서 "방금 먹은 그 요리를 자네가 직접 한번 해보게나" 하는 것도 별다른 차이가 없는 주문 같은 느낌..이란 말이지요. 스엥님이 이 그림을 그렸던 과정샷을 0.5배속으로 내 눈앞에서 보여준다면 겨우 따라 그릴 수 있을까말까. 그렇다고 과정샷을 차마 요구할수도 없고 말이지요. 

 

망설이면서 머뭇거리는 나를 보더니, 어떻게 그리는지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 그려봐야 나중에 방법을 알려주면 귀에 더 쏙쏙 들어와요. 한마디 툭 건네는 스엥님. 아.. 얄짤 없구나. 나 완전 초딩처럼 그릴텐데 X 팔려 어쩌지? 란 마음도 잠시, 어찌됐건 선생님 도움 없이 죽이되든 밥이되든 혼자 그려야 겠구나 싶어서 우선 선생님이 사용한 크레프트지, 스케치용 연필, 붓펜을 챙겼다. (참고로 누런 크레프트지는 그림 초보자의 어설픈 그림도 왠지 느낌있게 만들어주는 효자템) 

 

그림을 막 그리기 시작하는데 선생님이 매의 눈으로 슬쩍 보더니 왈,

 

"사진보고 그려요. 제가 그린 그림 보고 그리지 말고" 

 

뜨끔.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원본 사진을 봤는데, 오머나 막막한거. 이 어려운 사진을 어떻게 그림으로 형상화 할 수 있단 말이가. 헛웃음이 났고, 자꾸자꾸 선생님의 그림을 훔쳐보고 싶고 커닝하고 싶은 유혹이 올라왔다.  

 

 

물웅덩이 원본사진

 

 

누군가 자신의 시선을 담아, 자신만의 색, 자신만의 선, 자신만의 터치로 이미 그려놓은 그림을 "따라그리는 것", 좀더 정확히 말하면 "훔쳐그리는 것"은 쉽다. 쉬운 노력으로 "와!" 하는 거짓 탄성을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사진 원본을 보고 "너만의 시선을 너만의 색, 선, 터치로 표현해봐"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다. 초보자에게 "맞아. 처음 그리면 되게 그지같을꺼야. 유치원생보다 못한 이상한 그림을 직면해야 할지도 몰라. 그런데 그게 진짜 네 그림이야. 네가 선택한 색, 선택한 구조, 선택한 생략, 선택한 선. 너만의 독특한 시선." 그렇게 시작해야 비로소 그림 실력이 느니까, 그렇게 직면하고 고쳐보고, 또 직면하고 다른 시도도 해보고. 그렇게 하라고 한다. 

 

처음엔 너무 막막해서 스엥님 몰래 스엥님 그림 힐끔 훔쳐봄. 아스팔트 이 점박이 같은 모양은 그냥 이렇게 과감하게 검은색으로 칠해도 안죽는구나. 물결 모양은 이렇게 소용돌이 치듯 원을 그리면 되는구나. 온전히 사진만 보면서 그리는게 버거울 땐 선생님의 그림을 훔쳐보며 힌트를 얻긴 했지만, 그래도 "원본사진"에 더 눈을 많이 보내면서 서툴지만 나만의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이 뿌듯했다. 다음에는 조금더 용기를 내서, 남이 그린 그림을 훔쳐보지 않고 내멋대로, 내선대로, 내 선택대로 그리는 실험을 해봐야겠다. 그래야만 선생님의 물웅덩이와는 전혀다른 느낌의 "나만의 물웅덩이" 그림이 탄생할 것 같다. 

 

너무 막막할 때는 먼저 간 선배의 발자취를 "힐끔" 쳐다보고 "참고"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몸에 배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듯 "안전한 그림그리기"가 반복되면 나만의 선, 색깔, 시각을 찾아서 과감한 실험을 할 엄두도 안 날 것 같다. 그래서는 나만의 것을 찾는 자유의 경지는 영영 도달하지 못할 듯.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쉽게 얻어지는 힌트, 훔쳐보기, 베끼기. 당장은 쉬운데 발전이 없다. 나만의 시선, 나만의 색감, 나만의 선, 나만의 터치로 상대에게 울림있는 감동을 주기가 어렵다. 가짜는 금방 들통이 난다. 힘들더라도, 그지같은 글, 그지같은 그림, 그지같은 발표에 얼굴이 화끈거려도. 견디자. 그리고 '직면'하자. 그러면 막 노력해서 고치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더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더 쓰고 싶은 열정이 생기니까. 

 

 

 

 

 

새벽달이 그린 물웅덩이

 

 

 

다음 그림은 온전한 "내버전의 물웅덩이"로 그려보고 싶어. 사물을 관찰하는 '눈'과 관찰 한 것을 표현하는 '손'을 갖고 싶다. 열심히 그리자. 

댓글